PC wezine 상세

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읽고, 쉬고, 다시 집중하는 하룻밤|더숲 아카데미하우스 ①

  • 2026.05.11
  • By 콘텐츠팀

글과 사진 송주홍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본관’ 건물. 1층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2~3층은 북스테이, 4층은 북카페로 운영한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산새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웠다.
산새 소리 들은 게 얼마 만인가.
아주 옛날엔 참새구이 파는 집이 더러 있었다. 주로는 어른들 안줏거리였다.

그 틈에 끼어, 몇 번인가 먹어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이나 흔한 새였다.
그 많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도심을 벗어난 마을버스가 북한산 자락 따라 언덕길을 찬찬히 오르던 참이었다.
공기의 결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아카데미하우스-통일교육원’ 정류장 앞에 버스가 멈춰 섰다. 종점이라고 했다. 자연이 허락한 마지노선이었다.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본관까지 가려면 여기서부터 5분쯤 더 언덕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버스 기사가 친절히 설명해 줬다. 5분쯤이야. 자연이 품을 내어준다는데 1시간인들 못 걸어가랴.

버스에서 내렸다.
양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때였다. 산바람이 불어왔다.
따뜻한 봄바람이었다.
산벚나무에서 꽃잎이 흩날렸다.
수채화 한 폭이 이보다 아름다울 순 없었다.

과연 감동이었다.
버스 타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동차 타고 본관까지 내처 올라갔으면 지나쳤을 풍경이었다.

더딘 걸음 끝에, 더숲 아카데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종점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바로 보이는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입구.

 

목차
[Heritage]_졸부의 품격과 ‘또라이’
 


 

[Heritage]_졸부의 품격과 ‘또라이’

지난 4월 6일, 더숲 아카데미하우스가 정식 오픈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유 아카데미하우스’‘더숲 아카데미하우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렇다. 아카데미하우스는 말 많고 탈 많던 시절을 거쳤다. 오랜 시간 운영 주체와 활용 방안을 놓고 여러 논의가 오갔다.
역사성과 상징성이 담긴 공간이었다.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그 가치를 훼손하는 활용 계획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실례로 2020년, 극우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가 웃돈 주고 매입하려 했었다.
소유주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이하 기장)에서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기장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거다. 

그렇다고 뜻있는 개인이 나서기엔 거대한 규모였다.

아카데미하우스는 북한산 자락 1만 평 숲속에 자리한다.
이를 부동산 가치로만 따질 순 없겠으나,
이해를 위해 설명하자면 2004년 기장에서 약 120억 원에 이곳을 인수했다.

운영난으로 2020년 매각을 공고했을 때 매입 희망가가 약 260억 원이었다.
누군가 매입하기에도,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임대해 운영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여건이었다.

난망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카데미하우스는 10년 가까이 사실상 방치됐다.



▲ 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 


그랬던 아카데미하우스를 떠맡겠다고 나선 이가 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다.

2024년 기장에서 탁 대표에게 공간 운영을 제안했다. 고민 끝에 그해 9월 아카데미하우스 임차인이 됐다.
그때부터 1년 반가량 보수공사를 거쳐 이번에 정식 오픈한 거다.

탁 대표는 스스로를 ‘또라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는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아무도 심으려 하지 않으니, 자신 같은 ‘또라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돈 많은 사람은 이런 공간에 관심이 없어요. 왜냐.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사업이거든. 돈 없는 사람은 뜻이 있어도 할 수가 없어요. 엄두를 못 내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도 나서질 않는 거예요.
그렇다고 마냥 방치해둘 수 있나요? 여기가 어떤 공간인데.

그래서 고민고민 끝에 시대적 소명이라는 생각으로 떠맡은 거예요. 그 덕분에 요즘 애들 말로 아주 쌍코피가 터지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이 일흔에 좀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 1966년 아카데미하우스 준공식에 참석한 독일 아카데미 운동의 창시자인 에버하르트 뮐러 박사(왼쪽)와 강원용 목사.[사진 제공 여해재단]

 

탁 대표가 말하는 ‘시대적 소명’이란 무엇일까. 이를 얘기하려면 아카데미하우스 탄생부터 짚어야 한다.

기독교 사회운동의 선구자였던 故 강원용(1917~2006) 목사가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물리적 거점이 필요했던 크리스챤아카데미는 1년 뒤 독일 교회 후원으로 북한산 자락에 교육과 모임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

아카데미하우스의 출발이자, ‘대화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아카데미하우스는 반세기 동안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전위 역할을 해왔다.

이른바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1979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중간집단교육 간사들을 구속 기소한 공안사건)만 봐도 아카데미하우스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탁 대표는 아카데미하우스의 지난 세월을 이렇게 정의했다.


 
▲ 아카데미하우스 본관 공사 당시 모습(1966년 4월)과 준공 이후 본관 앞에서 찍은 행사 사진.[사진 제공 여해재단]


“이곳은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로 시작한 이래,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숙의하던 대화의 성지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노동자와 여성을 비롯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교육하던 민주주의 산실이었고요. 그러했던 아카데미하우스가 방치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었습니다.”

이 시점 탁 대표는 ‘졸부의 품격’에 관해 이야기했다.
빨리빨리 정신과 무차별적인 개발로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현주소가 졸부와 다를 바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돈만 밝히는 졸부에게 품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대답하지 못했다.

탁 대표는 이어 유럽인의 품격을 예로 들었다.

“제아무리 미국이 세계를 지배한다지만, 미국인들은 영원히 유럽인을 넘어서지 못해요. 왜? 그 역사가 250년밖에 안 되거든.

유럽인들은 지금도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잖아요. 유럽인들은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고 오늘과 조화하면서 미래를 혁신하거든요.

그런 데서 품격이 나오는 겁니다.
역사와 전통을 깡그리 부숴버리고 무작정 새로운 건물만 짓는 건 졸부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공간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그렇게나마 몇 곳이라도 품격 있는 공간들이 대한민국에 남아 있길 바라는 거죠.”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본관’ 뒤편 테라스. 이곳 테라스에서는 북한산 전경을 바라보며 음료와 차를 즐길 수 있다.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전경도. ①구름의 집 ②새벽의 집 ③내일을 위한 집 ④여해의 집 ⑤기도의 집 ⑥본관 ⑦대화의 집 

 

→ 이 공간에서의 경험은 어떤 모습일까. 그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고향사랑기부제 #고향사랑기부 #연말정산 #세액공제 #답례품

이서연 기자

dysl1006@fairtravelkorea.com

 

좋아요
초기화 버튼

연관된 지역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댓글 공통

0 / 100
댓글 0

제목

팝업닫기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