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40년 쇳소리, 아직도 김해 한복판에 울린다
- 2026.06.04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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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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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쇳소리, 아직도 김해 한복판에 울린다
▶ 가야 철기 문화의 후예, 가야대장간 이야기
김해 봉리단길 골목에 들어서면 낯선 소리가 들린다. 쇠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다. 카페와 음식점, 소품 가게가 늘어선 거리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규칙적인 쇳소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요즘 도심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가야대장간이다. 금관가야의 옛 도읍지였던 김해 한복판에서, 불을 피우고 쇠를 달구고 망치로 두드리는 전통 단조 방식 그대로 운영되는 대장간이다. 공장 기계가 하루에 수천 개를 찍어내는 시대에, 이곳은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만 물건을 만든다.
붉게 달아오른 쇠를 화로에서 꺼내 모루 위에 올리고, 수십 번, 수백 번의 망치질을 거쳐 형태를 만들어낸다. 빠르게 생산하기 위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장인의 감각과 손기술이 더해져 하나의 물건이 완성된다.
김해는 단순히 대장간이 자리 잡은 장소가 아니다. 철을 다루는 기술로 고대 동아시아 교역을 주도했던 금관가야의 땅이다. 가야는 우수한 철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열도와 중국, 한반도 각지와 활발하게 교류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위에서 대장간이 살아남아 2대째 불을 지피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생업의 연속이 아니다. 수천 년 전 철기 문화를 꽃피웠던 도시에서 지금도 쇠를 달구고 망치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 16세 소년이 40년 장인이 되기까지
전병진 장인이 처음 쇠를 잡은 건 1980년, 열여섯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새 평생의 업이 됐다.
정식으로 김해에 대장간을 연 것은 1992년. 이후 3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화로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쇠의 색만 보고도 온도를 가늠하고, 망치질 소리만 들어도 금속의 상태를 읽어내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그를 '명품 식칼을 만드는 43년 경력 대장장이'로 소개하기도 했다. 오랜 내공이 세상에 알려진 셈이다. 지금은 아들 전현배 씨가 아버지 곁에서 기술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기술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후계자의 부재라는 점을 생각하면, 2대째 망치를 이어 잡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드는 500가지 도구

가야대장간에서는 500여 종이 넘는 칼과 농기구, 망치, 생활 철물을 제작한다. 모두 전병진 장인과 아들의 손에서 탄생한다.
이곳이 지금도 고집하는 것은 전통 단조 방식이다. 쇠를 불에 달군 뒤 망치로 직접 두드려 형태를 잡는 방식이다. 같은 칼 한 자루를 만들더라도 기계 제품과는 과정 자체가 다르다.
장인들은 반복적인 망치질이 금속 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수백 번의 타격을 통해 쇠의 결이 단단해지고 내구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단골 고객들 가운데는 수십 년째 같은 칼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날이 무뎌지면 다시 갈고, 손잡이가 낡으면 수리해 사용한다. 물건을 쓰고 버리는 소비 문화와는 다른 풍경이다
▶ 점점 사라지는 대장간, 더욱 특별해진 쇳소리
사실 오늘날 대장간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전통 철물 제작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에서 운영 중인 대장간은 94곳으로 집계됐다. 한때는 농촌 마을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흔한 공간이었지만, 산업화와 기계화의 흐름 속에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특히 장인들의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가 이어지면서 전통 방식으로 화로를 운영하며 직접 쇠를 두드리는 대장간은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다. 공식적인 최신 전국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운영 중인 전통 대장간이 당시보다 더욱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생활의 중심이었던 대장간이 이제는 100곳도 채 남지 않은 셈이다. 그렇기에 김해 봉리단길에서 들려오는 쇳소리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작업장의 소리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전통 기술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 고철 더미가 아닌, 박물관 같은 공간
대장간이라고 하면 어둡고 어수선한 작업장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2021년 봉리단길에 새롭게 문을 연 가야대장간은 그런 선입견을 깨뜨린다.
공간 안에는 직접 만든 칼과 농기구들이 정갈하게 전시돼 있다. 얼핏 보면 작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가까운 모습이다. 전 장인은 이곳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가야 철기 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격대도 다양하다. 3,000원짜리 소품부터 8만 원대 농기구, 맞춤 제작 제품은 수십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 특히 소형 호미는 젊은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실제 농사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인테리어 소품이나 선물용으로 찾는 사람들도 많다.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봉리단길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됐다. 연인들은 기념품을 고르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화로와 망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 물건을 팔고 끝나지 않는 장인의 방식
가야대장간은 물건을 판매하는 것으로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 칼날이 부러지거나 무뎌지면 대장간으로 보내 수리를 받을 수 있다. 1회 무상 수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물건 하나를 오래 사용하길 바라는 장인의 철학이 담긴 방식이다.
전병진 장인은 좋은 물건은 오래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품을 판매한 뒤에도 손질과 수리를 통해 고객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 속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수천 번의 망치질 끝에 완성된 칼 한 자루에는 장인의 시간과 경험, 그리고 김해의 역사가 함께 담긴다.
이러한 가야대장간의 제품은 직접 방문해 구매할 수도 있지만, 김해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기부자는 장인이 직접 만든 칼과 생활 철물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의 전통 기술과 장인 정신을 응원하는 의미도 더할 수 있다.
40년 넘게 이어진 화로의 불. 김해 봉리단길에서 울려 퍼지는 쇳소리는 오늘도 금관가야의 철기 문화를 현재와 연결하고 있다.
김기현 기자
simonkim@fairtrav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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