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실천하는 어른|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 인터뷰②
- 2026.04.30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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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30
- By 콘텐츠팀
글 사진 송주홍
인터뷰 1편 보러가기 ▶ 실천하는 어른|더숲문화재단 탁무권 대표 인터뷰 ①
목차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공간을 꿈꾸며
일생을 붙들어온 단 하나의 화두, 공동체
인터뷰를 마치며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공간을 꿈꾸며
2000년대 들어서며 온라인 서점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과 편의성에서 오프라인 서점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2014년 뒤늦게 도서정가제를 시행했다. 한발 늦은 조치였다.
2010년대엔 얘기한 것처럼 골목골목 마을 도서관이 생겨났다.
2015년을 기점으로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람들은 이제 책 대신 쇼츠를 본다.
그러는 사이, 한때 6,000곳 육박했던 오프라인 서점이 2015년 2,000곳 수준으로 줄었다.
제일 먼저 종로서적이 문 닫았다. 국내 2위 도매상이었던 송인서적이 폐업했다.
교보·영풍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반디앤루니스도 철수했다.
▲ 복합문화공간 더숲 내부 모습.
2016년 12월은 그러니까 오프라인 서점이 쇠락의 길을 걷던 한가운데였다.
그런 시기에 탁 대표는 오히려 더 큰 규모로 서점을 열었다. 복합문화공간 ‘더숲’의 시작이었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 또한 확신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 했다.
누군가는 무너져가는 서점의 미래를 고민하고 방향성을 실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세는 인터넷으로 넘어갔습니다. 서점 수요는 앞으로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앞으로의 서점이 책 판매만으로는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1999년 2만 6,000곳이었던 서점이 2024년 1만 곳 정도로 줄었으니까요. 일본에서 미래의 서점 모델로 자리 잡은 건 ‘츠타야’ 서점입니다. 근데 엄밀히 말해 츠타야는 서점이 아니라 소품샵 내지는 편집샵이죠. 모든 걸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공간이에요. 그게 비즈니스 모델로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생각하는 서점의 미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는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상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공간을 구상한 겁니다.”
노원역 인근 지하 1~2층 300평 규모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더숲은 기본적으로 노원문고의 확장 버전이다.
책을 중심에 둔 북토크, 낭독회를 비롯해 각종 프로그램과 모임을 주관한다.
여기에 예술영화관과 갤러리, 카페와 베이커리 등을 결합한 형태다.
40여 석 두 관으로 나눈 예술영화관에선 종일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갤러리에서는 조명받지 못하는 중견작가, 지역작가를 초청해 전시한다.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읽고,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인간의 오감을 모두 열 수 있는 공간이다.
흔히 미술관을 화이트큐브라고 말한다. 현대 미술의 높은 문턱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이와 대비하는 개념으로 탁 대표는 더숲을 ‘쓰레빠’와 ‘뒷담화’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 복합문화공간 더숲의 갤러리
▲ 복합문화공간 더숲의 아트시네마 내부 모습과 입구에 붙어 있는 독립 영화 포스터.
“미술관 한 번 가려면 어쩐지 차려입고 나서야 할 것 같잖아요. 그만큼 심리적 문턱이 높은 거죠. 특히나 입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은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동네 마실 가듯 ‘쓰레빠’ 신고 편하게 오가며 그림도 좀 보고 책도 읽으면서 문화적 감수성을 키웠으면 하는 거예요. 영화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뒷담화’예요. 영화를 그냥 감상하는 걸로 끝내지 말고, 관객과의 대화이든, 감독·배우 초청 토크쇼든 함께 영화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죠.”
물론, 모든 과정에 순탄했던 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에게도 복합문화공간 경영은 쉽지 않았다. 모두가 예측했던 대로 더숲은 문 열고 5년간 적자 늪에서 허덕였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적자 폭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탁 대표는 되레 투자를 늘렸다. “문 닫으면 안 된다”며 고마워하는 시민이 많았다.
그에 대한 보답이었다. 지역사회에 이런 공간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지속가능성을 말이다.
수많은 문화예술 기획자, 마을활동가들이 열정 하나로 이 바닥에 뛰어든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지속가능성을 찾지 못해 사그라든다.
소셜 미션만 고민하다가 배를 곯고, 비즈니스 모델만 추구하다 정체성을 잃는다.
그런 이들에게 사업가 탁무권은 사실 성공모델이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는 탁 대표를 이렇게들 표현한다.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공한 사업가.
그가 벌이는 모든 사업, 모든 공간이 그렇다. 수익과 공익을 분리하지 않는다.
수익을 추구해야 할 공간에서 끊임없이 공공성을 실현한다. 공공성을 실현하면서도 적절하게 수익을 창출한다.
그렇게 잘해왔대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노원문고를 시작한 이래 30여 년간, 그 또한 밤낮으로 소셜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 사이에서 고민했다.
“사업체가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그칠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 환원이자 기여일 수는 없을까.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지속해 왔던 고민이에요. 더숲 또한 그런 공간이었으면 했던 겁니다. 그런 공간이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경영상으로도 지속 가능해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경영이란 뭘까. 돌고 돌아 제가 내린 결론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인 공간을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너무 뻔하고 추상적인가요?(웃음)”
탁 대표는 그렇게 믿었고,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노원서당, 시 창작 수업, 클래식 살롱, 재즈 공연, 인디밴드 콘서트, 인문학 강좌, 와인 모임, 팟캐스트 방송과 미디어 교육 등 장르와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험해 왔다.
어쨌거나 중심은 사람이었다. 5년을 버틴 끝에 더숲은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로 10년 된 더숲은 이제 노원은 물론이고 도봉과 강북 구민들까지 즐겨 찾는 명소다.
더숲의 지난 10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문화예술의 일상성입니다. 저 멀리 홍대까지 가지 않아도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 두 번째는 대안 모색입니다. 현재의 삶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지, 책, 영화, 미술, 음악 같은 걸 함께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고 고민해 보면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모색해 볼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해두죠.”
일생을 붙들어온 단 하나의 화두, 공동체
더숲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한 탁 대표는 이후로도 다양한 공간 실험을 해왔다.
2020년엔 인왕산 중턱에 북카페 초소책방을 차렸다.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해 50년 넘게 경찰 초소로 이용했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2024년엔 경기도 시흥시에 소전미술관을 오픈했다. 건설 재벌의 별장이었던 공간을 카페 겸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전경도. ①구름의 집 ②새벽의 집 ③내일을 위한 집 ④여해의 집 ⑤기도의 집 ⑥본관 ⑦대화의 집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본관'.
▲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본관' 옥상에서 북동 방향을 바라보면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수락산(왼)과 불암산이다.
가장 최근인 2026년 4월엔 북한산 자락 1만 평 숲속에 복합문화플랫폼 더숲 아카데미하우스를 열었다.
‘아카데미하우스’는 1966년에 지어 오랜 세월 민주주의 가치를 숙의하던 대화의 성지였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교육하던 민주주의 산실이기도 했다.
최근 1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됐었다. 그 공간을 카페, 갤러리, 북스테이(호텔) 등으로 새롭게 단장한 거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링크)
탁 대표의 다음 목적지는 제주도다.
한라산 입구에 있는 제주YMCA의 ‘국제청소년의집’을 리모델링하고 있다.
1986년에 지은 수련원 건물이다. 2004년 폐쇄한 이후 20여 년째 방치됐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삶 전체가 대체로 그러했듯, 그가 먼저 나서서 공간을 물색한 건 아니다.
우리 공간 좀 맡아달라며, 그를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 마땅히 나서야 할 자리라고 판단하면 기꺼이 나섰다.
그렇다고 아무 공간이나 떠맡지 않았다.
위의 일관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역사와 전통이 깃든 공간, 그래서 복원할 가치가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일 때만 수락했다.
목적도 분명하다.
그 공간의 형태와 규모와 활용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목적은 오직 하나다.
1994년 노원문고에서 2026년 더숲 아카데미하우스까지, 더 거슬러 1976년 성균관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머리띠 두를 때부터, 비행기 타고 제주도 국제청소년의집 오가는 오늘날까지,
인간 탁무권이 붙들어온 단 하나의 화두는 공동체다.
지난 4월 더숲 아카데미하우스 개관전 <숲을 거닐다> 오프닝에서도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 공간을 새롭게 오픈하면서 고민했던 첫 번째 키워드가 공동체 복원이었습니다. 아카데미하우스가 쇠락해 온 과정처럼, 우리의 지역사회 공동체도 상당히 망가지고 폐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카데미하우스를 복원해 지역사회 공동체를 회복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삶을 내내 따라다녔던 책, 서점, 공간 같은 키워드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었다. 그 자체로 목적이었던 적은 없다.
수많이 거쳐 간 대외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활동이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2012~2017)이다.
준비위원회부터 함께 했다. 재단 창립하고 6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지역사회에 해결해야 할 공통 과제가 많은데, 관(官)의 재원과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단 창립 당시, 그는 지역사회의 참여와 나눔을 통한 복지공동체 구현, 교육·복지 사각지대의 틈새계층과 위기가정 지원 등을 핵심 목표로 내걸었다.
“당시 관 주도의 복지는 최소 생계를 보전해 주는 ‘사회복지’ 수준이었어요. 취약계층 집에 장판 깔아주고,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갖다주고, 기초생활수급자 도와주는 식이었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외된 누구라도 다양한 욕구를 드러낼 수 있고, 그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지원해야 하는 거죠. 그렇듯 다양한 복지 수요에 부응하고 구민 누구나 누리는 교육과 복지를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재단에서는 국내 최초로 휴먼라이브러리(사람이 책인 도서관. 책이 되고 싶은 사람이 도서관에 자신을 등록하고, 그 ‘책’을 ‘대출’한 사람과 대화하는 멘토 대여 시스템)를 시도했다.
세금이 아닌 민간 기부로 취업준비지원금(지역의 만 16~24세 미취업 청소년·청년 50명 대상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했다.
이 또한 국내 첫 사례로, 당시 전국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아동, 여성, 다문화, 중증질환자 등 복지 사각지대 주민을 발굴해 지원했다.
▲ 활짝 웃고 있는 탁무권 대표.
탁 대표는 우리 사회가 원자화되어있다고 진단했다.
경쟁에 매몰돼 서로를 적대시하면서 호시탐탐 눈치 보고, 내 것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면서 남의 것은 어떻게든 빼앗으려고 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느냐고 한탄했다. 그가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은 세상이 망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는 세상이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도생은 각자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죽자는 거예요. 원자가 아니라 분자가 돼야 해요. 공동체가 허물어지면 행복할 수 없어요. 인간의 본능이 그래요.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더숲문화재단의 ‘더숲’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더불어 함께 숲을 만들어 나가자는 뜻이에요. 다 같이 힘을 모아 공동체를 복원했으면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만 하면 뒷방 노인네 같잖아요.(웃음) 그러니까 내가 쉬질 못해요. 구체적인 거, 뭐라도 하나씩 하는 수밖에.”
참으로 바삐 달려왔고, 여전히 달려간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자원봉사센터다. 그곳에 갈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거기에 모인 누구도 남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거꾸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놓으려고 모이는 사람들이다.
밖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천사가 되어 모인다.
그런 이들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에너지를 동력 삼아 70년을 달려왔다.
정작 스스로는 챙기지 못했다. 70년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거 딱 하나가 아쉽다.
“너무 여유 없이 살았어요. 단 한 순간도 날 위해 살지 못했어. 근데 그건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세대가 가지는 한계였어요. 우리는 집단주의를 강요받은 세대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 저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70%는 본인을 위해 사시고, 한 30% 정도만 이타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되라는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왜 그렇게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느냐고 물었다.
탁무권 대표는 씨익 웃으며 단지 ‘팔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절대 미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불현듯 제목 먼저 떠올랐다.
실천하는 어른.
그렇게 적고 보니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그래 놓고 이제 와 걱정이다.
어쩌면, 아니 분명 ‘어른’이라는 수식어를 불편하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러고도 남음이다. 어쩌겠는가. 어른이기에 어른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줬으면 그만이지』를 쓴 김주환 기자는 어느 인터뷰에선가 김장하 선생의 삶을 기록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인터뷰를 보며 부러운 마음이 퍼뜩 들었다. 만인이 존경하는 어른의 삶을 기록하는 것. 기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아니겠는가.
먼 훗날, 세월이 좀 더 많이 흘러 탁무권 대표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면, 그런 목소리가 모인다면, 그 영광만큼은 내가 누렸으면 좋겠다.
탁무권 대표는 2019년 다른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혹시 아직 안 다녀왔다면 그 길을 동행하고픈 마음이다.
함께 걸으며 듣고 싶다. 어른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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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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